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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사전 베스트 #10
 
작성일 : 15-02-10 01:05
천상병의 [귀천] + [새]
 글쓴이 : IN-BEST
조회 : 3,408   추천 : 0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Back to Heaven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

* The title of this poem, the Chinese characters Kwi(return) and
Chon(Heaven), gave its name to the tiny cafe in Seoul's
Insadong neighborhood run by Mok Sun Ok, the poet's wife.

("The smallest cafe in the world", the poet claims in a poem not included in this selection.)
This is the poet's best-known poem,
it has several times been set to music.



천상병 시인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시인, 가장 천진난만한 시인,

가장 즐겁게 살다가간 시인, 아니면 가장 불행했던 시인.
어떤 수식어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인이 바로 천상병이다.

시 자체만을 놓고 보면 그는 분명 아름답게 살다간 시인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누가 그를 가리켜 아름답고,
즐겁게, 천진난만하게 살다가 간 시인이라고 선 듯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시의 요지는 나를 부르는 그 날 세상에 대한 아무 미련 없이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매 연마다 첫 행에서 반복되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와
「귀천」이라는 제목에서 이러한 정신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우리를 부르는 그 날 어떠한 자세로 돌아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시의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각연의 주된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이슬’, ‘노을’, ‘소풍’의 시어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시 속에도 나와 있다시피 ‘이슬’은 빛이 닿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즉 이슬은 새벽 시간에만 잠시 존재할 뿐이다.

노을 역시 마찬가지다.
저녁 무렵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소풍’ 역시 아주 짧은 시간을 상징하는 시어이다.

슬픈 드라마보다도 더 비극적이고 힘들었던
천상병 시인의 삶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아름답게 읽힐 수 있는 것은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묘사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시인의 모습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세상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시의 독특한 기법을 고려할 때 마지막 행에 나오는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를 겉으로 드러난 대로만
이해하는 데는 다소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역설법이라는 기법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시 속에 나오는 ‘이슬’, ‘노을’이 가지는 숨은 의미 역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시에는 욕심 없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세상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배어 있기도 하다.

2008년 11월 1일 KBS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특집
'시인만세' 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에서 이 시는 5위를 기록했다.
국민들이 이 시를 그토록 애송하는 것은 시 속에 내재되어 있는 또 다른 정서 때문일 것이다.

3연으로 되어 있는 짧은 시지만 시 속에 깃들여 있는 이야기는
몇 날 밤을 새워가며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래에 천상병의 시집 『귀천』에 실린
그의 삶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적어본다.

천상병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예행 연습이 끝난 죽음이었다.

그가 처음 세상을 떠난 것은 1967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서울 중심부에 있는 그들의 본부인 그 무시무시한 지하실로
그를 끌고 갔을 때였다.

그는 거기서 물 고문과, 성기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전기 고문을 받았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상병은 여섯 달을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자백을 강요받았으나 친구가 여럿 있다는 사실 말고는 자백할 것이 없었다.
이때의 전기 고문으로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1930년 일본 땅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되던 해,
가족을 따라 귀국하여 마산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가 아직 학생이던 1949년 월간 잡지 <<문예>>에
그의 첫 작품 ‘강물’이 발표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1952년경에는 이미 추천이 완료되어
그는 기성 시인 대접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잠시 부산에서 일을 했는데,
시를 쓰는 한편으로 문학평론을 여러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평론 활동도 그의 작가로서의 생활을 중요한 일부분을 이룬다.

고문을 받은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천상병은 또 한번 ‘죽음’을 맞게 된다.

고문의 깊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타령을 나날을 떠돌던 그가
마침내 1971년 실종된 것이다.

친구와 친척들은 여러 달 동안 백방으로 그를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행려병자로 사망하여 아무도 모르는 어디엔가에 파묻힌 것으로
결론을 내린 그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작품들을 모아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여러 차례의 죽음으로 점철된 것이 천상병의 생애라면,
그의 삶은 또한 여러 겹의 부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 있다는, 서울의 시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느닷없는 소식이 왔다.

그는 거리에서 쓰러져 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두 번째 기억이 그의 생명의 끈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심한 자폐증상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대학 때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의 방문을 받은 뒤로는 그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자주 찾아오는 것이 도움이 되며
모든 것이 잘 되면 한두 달 뒤에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목순옥은 오빠의 친구를 매일 방문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다만 그에게는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철없는 어린애 같았고 어린애처럼 약했다.

천상병과 목순옥은 1972년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의 결혼생활은 때로는 심한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20년 간 계속된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냥 아무나 믿으며 술과 담배를 즐기는
그의 성품으로는 신혼부부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목순옥은 서울 인사동 골목에 작은 찻집을 열었고,
예술인, 작가, 언론인, 지식인들이 단골 손님이 되었다.


천상병 시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을 따서
이 찻집의 옥호를 ‘歸天’이라 불렀다.

이들 부부는 서울 북쪽 교외로 나가 의정부에 있는 낡은 가옥의 작은 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술에 곯은 시인의 간장이 성할 리가 없었다.
1988년 목순옥은 의사로부터 남편의 시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결코 회복할 가망이 없으니 불가피한 임종에 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춘천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인 친구가 그들을 돕기로 했다.
천상병은 곧 입원했고 목순옥은 그 뒤 여러 달 동안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달려가 매일 저녁을 그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매일 춘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적고 있다.
“하느님! 아직은 안 됩니다. 그에게 5년만 더 주십시오. 제발 빕니다. 5년만 더요.”

놀랍게도 그는 원기를 되찾았고, 그 뒤 퇴원하여 그럭저럭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5년 동안이었다.
이 유예의 기간 중에 그의 새로운 시집들과 에세이집들이 출간되었고,
1993년 4월 28일 그는 마지막 귀천 길에 올랐다.

이제 인사동 찻집 문을 열어도,
늘 그가 앉던 자리에서 들려오던 시인의 꺼칠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열다섯 명만 들어와도 꽉 차는 그곳이 만월일 때에도 그는 말했다.
“어서 와요, 여기 자리 있어요, 여기요!”

천상병은 되살아나서 자신의 유고 시집의 출판을 목격하는 진귀한 특권을 누렸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첫 유고 시집 이후에 몇 권의 시집을 더 출판할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유고 시집, 이번에는 진짜인 유고 시집이 간행된 것은 1993년이었다.

수락산계곡 / 천상병 공원 / 귀천정(歸天亭)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1930~ 1993)을 기리는 공원이
천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수락산 인근에 '시인 천상병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시비(詩碑), 육필 원고를 새긴 의자,
정자, 천 시인의 등신상(等身像·사람 크기의 조각품)
사진을 찍을 공간이 마련돼있고,
1.4m 높이 청동 등신상엔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석재 시비엔 시 '귀천'이 음각됐고 버튼을 누르면
시 낭송이 흘러나오는 음성 시비엔 '귀천' '피리' '새' '변두리' 같은
천 시인의 대표작 20편이 녹음됐다.

또 타임캡슐를 매설해두었는데 타임캡슐에는 천 시인이 생전에 쓰던 안경·찻잔·집필원고 같은
시인의 유품 41종 203점을 모아 (타임캡슐에) 묻었다
이 타임캡술은 천 시인 탄생 200주년을 맞는 2130년 1월 29일 개봉될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무한한 욕망을 드러내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몇십 년을 버티지 못하고 우리 모두는 저세상으로 갑니다.

가끔은 산에 올라 무수히 많은 집들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 올리며
백년 후에 살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누구나 한 세상을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과거보다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 때 떠오르는 시,

제가 무척 좋아해서 외우고 있는 ‘시’ 중 한 편으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입니다.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무겁고 우울한 죽음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죽음의 길을 볕 좋은 어느 봄날 소풍갔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은 맑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빛이 닿으면 소리 없이 사라지는 허망한 것입니다.

저녁노을은 아름답지만 곧 어둠이 닥쳐 올 것을 예견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동화 속의 그림을 연상시키지만 닥칠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고 있어 비장한 아름다움이 묻어납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허무나 절망을 슬프고 우울하게 표현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채색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천상병 시인은 자신은 천주교 신자로서 독실한 신앙심을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인은 1993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은 글을 써서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지만 술을 좋아해서 생활인으로서는 낙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나서는 몸도 성하지 못하여서,
72년에 결혼한 목순옥 여사가 인사동에 ‘귀천’이라는 찻집을 열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귀천’은 문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2010년 8월 목여사가 별세하면서 문을 닫고,
그분의 조카가 운영하는 귀천 2호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인사동 찻집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
우리는 시를 보면 그분의 품성이나 됨됨이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때 묻지 않은 여린 심성이 서정적인 시를 쓰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과 저승을 노래한 시가 한 편 더 있어서 내친김에 소개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노래한 ‘새’라는 시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이승에서 저승을 날아 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
새날이라 새가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 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 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가 나무 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일도 있었다고
나쁜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마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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